4월, TO-DO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on 2011. 4. 4. 11:28
청소하기
빨래하기
재료 세 가지 이상 들어가는 요리 해먹기
-가 주목적이 되어버린 주말의 연속.

데이트다운 데이트는 열번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뉴욕에서 맞는 두번째 봄이라니. 


앞으로 두달동안 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삼식이는 Mets 게임을 보고나서 플러싱에 가는 것, 이라고 했다. 너무 빠르고 쉬운 대답에 조금은 김이 새서 '그건 다 하루 안에 할 수 있는 거잖아' 라고 대꾸했더니, 그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하는 말: 근데 1년이 되도록 한번도 못했잖아...

(뜨끔.) 


올봄엔 나들이 할 것!

모르는 게 약?

Posted by hi G on 2011. 3. 23. 13:07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기에 인간은 진정으로 느긋할 수 없으리라- 라고 했던게 우디 앨런이었던가.

세상의 온갖 질병에 대해 배우면서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됐다. 만약 내가 어떻게 죽을 지 선택할 수 있다면 난 무엇을 선택할까? 

뇌졸중, 뇌출혈에 대해 배울 때는 손 쓸 수 없는 그 급작스러움이 너무 안타까웠다. 암에 대해 배울 때는, 기나긴 고통과 늘 도사리는 죽음의 그림자를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울 것 같았다. 지금은 감염성 질병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자연사? 그런건 의대에서 안 가르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천국에서 내 다음 생을 설계하며 신과 협상을 하는 것이다. 천사들이 내 선업과 악업 점수를 합산하여 이에 걸맞는 다음 삶을 정해준다. 정해진 틀 안에서 자신이 성별, 국적, 직업 등의 세부 사항은 선택할 수 있다. 우스운 건, 죽음이 고통스러울 수록 '선업 점수'가 올라간다는 부분이었다. 특히 불에 타 죽으면 어마어마한 보너스를 받을 수가 있는데, 중세시대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화형당한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이겠지만.

누구나 한번씩은 아프고,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고 산다. 열심히 하루하루 살다가, 아플때가 되면 아프고, 죽을 때가 되면 죽는다. 하지만 매일매일 질병과 노화와 죽음을 공부하는 것은, 나도 언제라도 이렇게 아플 수 있고 나도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사실을 늘 상기시키는 효과도 있다. (Leila는 '난 그래서 의대 안 갔잖아'라며 위로같지도 않은 위로를 건넨다.)



엄마는 '1만 명 중 한 명이 앓는 병이라도 네가 봤을 때 놓치지 말고 치료해 주라고 온갖 희귀한 병을 다 가르쳐 주는 건데, 넌 엉뚱한 걱정만 한다'며 혀를 차신다. '공부나 해!'


늘 그렇지만,
엄마 말이 제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