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일기 (12) Generic Progress Note

Posted by hi G on 2012. 6. 30. 02:05
-SUBJECTIVE
pt c/o fatigue but otherwise doing well

--OBJECTIVE
NAD, disoriented x 3
afebrile, vital signs stable
RRR, CTAB

--ASSESSMENT & PLAN 
25yo F s/p surgery shelf on POD#0 
-pain control with EtOH prn
-advnace to reg diet
-f/u DMT for weekend plans! woot woot 

외과일기 (11) A surgeon's heart

Posted by hi G on 2012. 6. 28. 01:22

요즘에야 외과 레지던트 중 여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다지만, 아직도 트라우마 팀의 외과의사들은 100% 남자, 그것도 제일 우락부락한 남정네들만 모여있다. 짧은 군인 머리에 불곰을 연상시키는 어깨와 팔뚝의 소유자인 닥터C는 외모로만 따지면 그중에서도 산도적 우두머리급이다. 절대로 웃는 일이 없지만, 쌀쌀맞지는 않다. 자기는 웃지 않으면서 웃기는 소리는 잘 하는데, 농담을 던지는 그 인상이 너무 험악해서 왠지 웃으면 안될 것 같은, 결국 그 상황이 우스운, 뭐 그런 사람이다.

트라우마 팀에서 2주 로테이션을 한다고 하니까 선배들은 다들, 트라우마 써전들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재밌을거야, 라고 입을 모았다. 아마 보통 사람들은 종처럼 보지 못하는 일들을 많이 봐서 그럴꺼야. 나만 해도 고작 2주가 안되는 시간을 트라우마 팀에서 보내는 사이 정말 충격적이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환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낚시용 작살을 목에 발사해 자살을 시도한 사람, 볼기짝에 총을 맞은 사람, 'bath salts'라고 불리는 마약을 복용하고 실려와 환각 상태에서 세상의 종말을 외치는 사람까지... 자동차 사고, 추락사고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사람들을 매일 다루는 트라우마 써전들을 보며, 왠만한 일 가지고는 놀라는 일이 없을만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닥터C의 수술대 위에 놓인 환자는 복부 총상으로 예전에 그에게 수술을 받았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이었다. 환부는 잘 아물었는데 얼마전부터 환부 주변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 다시 개복수술을 하게 된 상황이었다. 봉합선을 뜯자마자 누런 고름과 배설물이 복강에서 스며나왔다.

"Fucking A," 

그는 욕도 아주 덤덤하게 했다. 염증이 손쓸수 없이 번진 것이다. 어떻게든 최대한 조직을 보호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염증이 생긴 부위를 모두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당분간, 아니 어쩌면 평생 배변 주머니를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Fucking nice kid, too."

우악스러운 얼굴과 잘 어울리지 않는 안쓰러움이 그의 말 속에 묻어났다. 순간 가슴이 저렸다. 수술이 잘 안 풀리면 동반 질환이 너무 많다, 혹은 환자가 너무 뚱뚱하다며 환자 탓을 하는 의사는 본적이 있지만, 자기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를 하나의 '물체'가 아닌 사람으로 대하는 외과의사를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특히 우리를 치료하는 의사에게서 더욱 요구되는 것이 바로 empathy일 것이다. 유머 또는 detachment 등의 방어기제를 버리고 진솔하게 환자를 대하는 닥터C의 말은 감동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순간이 얼마나 흔치 않았으면 내가 울컥하기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