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별한 17세 소녀

Posted by hi G on 2011. 7. 18. 22:41
얼마전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맞닥뜨린 엄청난 장면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케이블 방송 TvN의 오디션 프로그램 '코갓탤Korea's Got Talent'에 나와 전국민 앞에서 온몸의 살을 떨며 밸리댄스를 추는 90kg에 달하는 거구의 여성. 알고보니 열일곱살 고등학생 박진영이었다. 

그의 춤이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는 관객들의 얼굴을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런 몸으로 밸리를 추는 게 신기한게 아니라 그냥 밸리를 너무 잘추셨어요'라고 말한 장진 감독의 말처럼 박진영의 밸리는 관능과 예술 그 자체였다. 그 옆에 앉아있던 박칼린의 눈이 감동으로 흐려졌다. 그만큼 섹시하고, 아름답고, 뭉클했다.

최근 몇 년간 거식증을 앓던 패션모델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인해 식이질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동시에 'Big women can be beautiful'이라는 주제가 조금씩 부각되고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갈 길이 너무나도 멀다. 포토샵된 성냥개비같은 다리 9쌍(아래)에만 열광하고, 연예인 몸무게 50kg 이상은 공식 프로필에도 올라갈 수 없는 곳이 한국이다.


소녀시대. 나는 이 포스트를 올리면 지난번에 이어 남자 안티가 백만명쯤 늘 것 같다.
(아참, 여긴 아무도 안 놀러오지?^^;)



뚱뚱한 여자는 성적 매력이 전혀 없는 코미디언이나 갱년기 아줌마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게 한국 대중매체의 현실이다. 그녀들이 뚱뚱해서 매력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아니, 그 반대다. 충분히 여자로서 매력적일 수 있는 사람들인데, 조금 살집이 더 있다고 해서 매력있는 역할을 맡지 못하게 하는 대중매체, 나아가 대중의 인식을 말하려는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전파되고 있는 이런 일그러진 신체상body image은 이미 대중들,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 깊숙히 각인되어 있다. 검증되지 않은 다이어트 방법과 비만 클리닉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전혀 뚱뚱하지 않은데도 다이어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여자들,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조금만 신경을 써서 보면, 거식증 등 의학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식욕 이상에 시달리는 여자들, 우리 주변에 분명히 있다. 이는 마른 여자만 예쁘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자들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식욕 이상에 대해 의학적 관점에서 조금 더 자세히 하면 좋겠지만, 이번에는 박진영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시작한 글이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쓰도록 하겠다. 어쨌든, body image에 관한 이와 같은 관점이 결코 새롭거나 독창적인 건 아니지만, 박진영의 밸리댄스가 내게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한마디로 뚱뚱한 여자도 아름답고 관능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내가 아는 첫 동시대 한국 여성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괜히 터프하거나 우스워보이려는 시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무대에서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 그리고 한창 꽃다울 나이인 열일곱 소녀처럼 공연 후 쑥스러워 하는 모습까지도 정말 자연스럽고 예뻤다. 

문득 내 중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가장 body image에 예민할 그 당시 나는 한창 살집이 올랐었다. 퉁퉁한 허벅지와 허리의 군살(소위 말하는 'love handle'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창피했었다. 나보다 날씬하고 눈 크고 얼굴 작은 애들을 얼마나 시기했는지, 또 짖궂은 남자애들이 던지는 한두마디 말에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도 똑똑히 기억난다. 

그리고 다시 박진영을 생각한다.

박진영은 대한민국 여성미의 기준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굉장한 포텐셜을 가진 사람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 나이에, 한국 여자로서, 그 몸무게로, 그만큼 자신감 넘치고 섹시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인지 나로써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용감하고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결국엔 자신감, 즉 가장 나 다운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 아닐까? 앞으로도 그의 선전을 바라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