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일기 (2) uncomfortable is the new comfortable

Posted by hi G on 2012. 5. 13. 07:43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일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외과 로테이션을 시작한지 나흘째인 어제는, 아침 5시반에 레지던트에게 장폐색small bowel obstruction 때문에 중환자실에 일주일째 입원해있는 환자 케이스를 present해야했다. 참고로 난 이전까지 장폐색이 뭔지도 몰랐다. 이름만큼 간단한 병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 환자는 신장, 심혈관, 호흡기 문제에 치매까지 있는, 중환자실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오랜 기간 머무르는 환자였다. 어떻게 이런 케이스를 나한테, 그것도 그 전날 밤에 해오라고 던져줄 수 있지? 이건 부당하다는 마음이 불끈불끈 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준비해갔다. 

그로부터 두시간 후, 처
음 뵙는 무시무시한 (정말 좋은 분인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난 무서웠다ㅠ) 어텐딩에게 달달 떨며 같은 환자를 present했다. 한순간 '아, 내가 대신 이 환자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말이 입에서 나오는지 코에서 나오는지 몰랐지만, 어쨌든 무사히 넘어갔다.

라운드가 끝나고 유방암 수술에 들어갔다. 환자는 40대 후반의 여성이었는데, 수술을 앞두고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원래 수술실에는 아무것도 갖고 들어오면 안되는데, 손에 어떤 팔찌를 꼭 쥐고 있었다. 마취가 들어간 후 그 팔찌를 멀찍이 옮겨놨다. 수술은 별탈없이 끝났지만, 환자에게 병마와의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오후 5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 며칠간 너무 바빠서 생각할 시간도 없었는데, 휴식이 찾아오자 갑자기 감정이 벅차올랐다. 자기연민이 마구 밀려왔다. 병리 자체도 모르는게 많은데, 그걸 어떻게 관리하고 치료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읽고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제 교과서는 없다. 이러이러한 상황에서는 무슨 프로토콜이 있나요, 하고 물어봤다가 혼났다. 프로토콜 따위는 없다고. 환자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방법을 정해야 한다고. 선배 의사들에게 질문은 계속 하는데, 아직 어떤게 적절한 질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매번 뭘 물어볼 때마다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다.

아픈 사람들을 보고 가슴 아파서 우는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해서 울고 있었다. 한쪽 유방을 도려낸 사람도 있고 갑상선을 통째로 들어낸 사람도 있는데, 이 사람들보다 내가 더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는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도저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일찍 잠을 청했다. 7시에 잠들어서 새벽 2시에 다시 일어났다. 모처럼 푹 자고 나니 좀 개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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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bowel obstruction, sentinel node biopsy, needle localization with wide excision of breast, parathyroidectomy 같은건 한번도 학교에서 가르쳐준 적이 없다. 학교에서는 병의 위험 요소나 병리 이치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만, 그걸 외과적으로 어떻게 치료하고 매니지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제 그걸 알아내는 건 앞으로 순전 내 몫이다. 다음날 무슨 수술이 잡혀있는지 보고, 그 수술을 왜 받아야 하는지, 수술 후 환자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수술 중간중간에 담당 의사와 레지던트가 내가 얼마나 케이스를 잘 이해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내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병원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의대생들에게 수모를 주는(?) 이 과정을 'pimping'이라고 부른다. 엄마 말로는, 이걸 한국에서는 '태운다(burn)'고 표현한다고 한다.


대충 이런식이다:

- 유방암 stage는 무엇으로 판단하니?
- TNM이요...
- 그게 뭘 뜻하지? .
- T는 tumor size, N은 node involvement, M은 metastasis입니다.
- 이 환자가 만약 node positive라면 stage 몇일까? 
- (몰라요... 거기까지만 하시지 ㅠㅠ)


혹은,


-환자 상태가 (이러이러)하니 (저런저런) 식으로 관리를 계속하면 되겠습니다.
-뭐 빠뜨린거 없니?
-네?
-INR수치를 계속 모니터링 해야되는거 뭐 없니?
-음....
-환자 약 리스트 본 적 있어?
-네? 네...(뒤적뒤적....10초 후.... 20초 후....)
-쿠마딘이잖아.
-앗, 네...
-INR 적정 수치가 뭔지 알아?
-음....1.0이요?
-그건 건강한 사람이고, 이 환자는 수치가 더 높아야겠니, 낮아야겠니?
-음... 낮아야 합니다.
-높아야지.


그렇게 지글지글 화형당하고 나면 5분 후에 답이 다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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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리를 잘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과의 내부문화에 익숙해지는 것도 큰 과제다. 어떤 순간에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말 한마디도 조심하게 되고 헷갈린다. 예를 들어, 수술 들어가는 동료에게는 'good luck!'이라고 하는게 아니라 'have fun!'이라고 말해줘야 한다. (한번 '굿럭!'이라고 했다가 지적받아서 알게됐다-_-) 'good luck'이 왜 안되는지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have fun' 역시 뭔가 부적절한 느낌이다. 사람 목숨이 걸린 수술을 들어가는데 '재밌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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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병을 고친다는 고귀한 목표가 있다 해도 다른 사람의 살을 찢고 피를 흘리고 조직을 적출해내는 행위는 일종의 방어기제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지난 며칠간 본 외과의사들의 주 방어기제는 humor와 detachment인 것 같다. 사람을 보는게 아니라 symptom과 lab수치와 imaging과 urine output과 intravenous fluid를 보는것이다. 큰 복부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계속 있던 어떤 환자가 어느날 아침 유독 신경질적인 상태를 보였다. 너희들이 의사 맞아? 몇시간씩 여기 묶어놓고 들여다 보지도 않으면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계속 뻔한 소리만 계속 할거야? 누구한테나 다 똑같은 소리만 하지? 나는 환자가 충분히 기분이 좋지 않을만도 하다고만 생각을 했는데,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내 담당 레지던트는 환자가 'delusional'하고 'confused'됐다고 말했다 (참고로 둘다 환자의 의식 상태를 나타내는 의학용어이다). 자기도 마음이 조금 상한 것 같아보였지만, 거의 완벽하게 감정을 컨트롤하는 듯했다.

이제는 환자 입장에서가 아니라 의사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데, 처음으로 울타리 반대쪽에 서게 된 나는 그게 아직도 서툴고 낯설다. 하지만 세상의 온갖 질병과 고통과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의사에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어기제가 필요한 건 당연한거 아닐까. 하얀 의사가운도 사실은 내가 환자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부각시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막이 아닐까. 이런 태도가 결과적으로 환자를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는 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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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to end on a positive note....많이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짧은 며칠간 정말 많이 배웠고, 또 정말 대단한 케이스를 많이 봤다. Mastectomy, parathyroidectomy, sentinel node biopsy, melanoma excision, small bowel obstruction, sarcoma resection, multinodular goiter, total gastrectomy 까지... 계속 무안당하고 말문이 막히는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빨리 페이스를 따라잡고 즐길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문득 집 싱크대에서 손을 씻으며 나도 모르게 손톱을 위쪽으로 향한 채 물이 팔꿈치 쪽으로 흐르도록 비누거품을 헹궈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마치 수술 전 스크럽하듯 말이다. 이렇게 작은것 하나하나 익숙해지고 immerse되면서 배워가는게 아닐까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