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일기 (9) "crazy"

Posted by hi G on 2012. 6. 14. 09:42
외과의사들은 대개 일을 해치우고 당장 결과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자기 손으로 암을 떼어내고 상처를 봉합하는 사람들이니 그럴만도 하다. 

같은 이유로 외과의사들은 자기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극도로 싫어하는 듯하다. 담낭을 절제했는데도 계속되는 우측 상복부 통증, 아물지 않는 다리를 끝내 절단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수 없는 당뇨와 혈당 수치...

자기 손으로 병을 고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건 분명 멋진 일이지만, 수술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대하는 외과의사들을 볼 때 마음이 착잡해지는건 한두번이 아니다.

설명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딴소리를 하거나 엉뚱한 것을 요구하는 환자, 통증을 유발하는 부위의 조직과 신경을 분명히 떼어냈는데도 계속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혹은 실어증(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에 손상이 생겨 생각하는 바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으로 괴성을 지르는 환자... 어떤 외과의사들은 이런 환자들을  'crazy' 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환자가 미쳤다고? 나는 매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가만보면, 환자들이 엉뚱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대부분 자신의 병과 치료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몇년씩 공부해도 다 완벽하게 배우지 못하는 것을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환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 너무 당연하다. 설명이 부족해서 환자가 이해를 못한 것과 환자가 'crazy'한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 이런 경우에 너무 쉽게 환자를 'crazy'하다고 부르는 의사들은, 단순히 게으른게 아닐까. 

수술 후에도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어떤 외과의사들은 외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면 귀찮다는 내색을 숨기지 않는다. 물론 외과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다른 과로 돌리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문제는 그 태도다. 환자를 한명의 사람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질병이나 케이스로 보는 그 고질적인 태도. 심지어 어떨때는 환자에게 우울증 병력이 있다던지 drug abuse history가 있다면 그 환자는 바로 'crazy' 레떼루가 붙는다. 실제로 통증이 없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던지, 진통제에 중독되서 꾀병을 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통증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감각이다. 같은 정도의 자극에도 어떤 사람은 더 예민하고 어떤 사람은 더 둔감하다. 그렇다고 해서 예민한 사람의 통증이 '가짜'라는 말은 아니다. 그 사람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도 그 사람에게만큼은 진짜니까.

통증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테스트는 현재 없다. 실제로 narcotic계열의 진통제는 중독성이 강해 거짓 통증을 호소하며 진통제를 처방받아 남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건 기껏 좋은 일 하고 뺨 맞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어느 교수님이 말한 적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과의사들이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crazy'라고 부를 자격은 없지 않나.

나는 학생이기 때문에 보통 환자를 볼 때에도 의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기껏 레지던트에게 환자 얘기를 해주면, 레지던트는 환자가 'crazy'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나는 별 문제 없이 얘기만 잘 나눴는데 말이다. Or is it just that my clinical acumen for psychosis is ridiculously underdeveloped?

제발, 'crazy'라는 말은 삼가해줬으면 좋겠다. 자기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환자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그리고 환자들에게도, 또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다른 외과의사들에게도 너무 모욕적이지 않나. 외과의사들이 바쁠대로 바쁘고, 지칠대로 지친건 알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