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에게

Posted by hi G on 2011. 5. 16. 13:52
E...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닮은 사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한때 내가 살아있었고, 어렸으며, 용감했고, 진실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사람. 그는 이렇게 말했었지:

I find that new places give me a sense of confidence because they turn my attention inward. And I have to see if the things I think about myself are true. Am I brave? Am I wise? [...] It's not about changing myself anymore but more about using new environments to prove the things about myself that are true and strong. If I say a thing about myself, it should stand up when I am all alone without support.

 
하지만 나란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고, 또 그 integrity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번 주말 오랜만에 만난 대학친구들과 얘기를 하며 다시금 느꼈다. 모든건 평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친구들끼리의 수다에서 시작됐다. 요즘 누구는 누구랑 논다더라, 누구는 약혼을 했다더라, 누구는 헐렁한 일 하면서 바쁜척 하며 산다더라, 누구는 옷도 참 못 입더라, 누구는 나이가 몇인데 애인도 없다더라... 분명히 남의 흉을 보고 남 트집을 잡고 있는데, 도리어 내가 비참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잘하고 있나. 난 행복한가. 왜 이렇게 날이 서고 모가 났을까.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 쉽게 좋아하고 잘 사귀던 나는 어디로 간걸까. 그게 진정한 내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신경이 곤두서있고 비판적인 게 나인걸까.

E, 너는 마치 controlled experiment를 하듯 별개의 환경을 통해 우리 자신의 진실하고 강한 모습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만, 지금처럼 호스타일한 환경에서 나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아 이렇게 움츠러든 채 방어적으로 수동적으로 살고 있는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에게 맞춰가며 꼬리내리고 integrity 같은거 훌훌 버리고 사는게 잘하는 걸까. 그걸 못하는 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이럴때 너라면 뭐라고 얘기할까.

E, 그때가 그리워. 
내가 처한 상황과 주변 환경과 나의 행동과 내가 원하는 것이 그토록 sync되었던 적은 그 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로도 없을꺼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 생각을 하면 내가 뭔가 아주 본질적이고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하곤해. 모든게 예측가능하고 정리정돈 되어있고 성공과 행복마저도 공식화되어버린 이곳..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이 길의 끝에서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지는 잘 알아. 그걸 깨닫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그걸 제대로 해보기에는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는걸. 대신 '낙오되지는 말자, 그 정도 능력은 충분히 있으니까, 그리고 기왕 시작한거 제때 끝내기나 하자' 라는 식의 하찮은 목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그리고 삶의 단순함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지내왔어... 그런데 그게 오늘따라 갑자기 왜 이렇게 하찮게 느껴질까.

E, 네게 마지막 한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묻고 싶어. 자아를 매춘해 가며 얻고 싶은 건 없어. 그게 성공이든, 연줄이든, 돈이든. 하지만 내가 너무 고집부리고 있는게 아닌지 문득 겁이 나. 자아, 그까짓게 뭐길래 난 그걸 지키기 위해 이렇게 몸부림 치는거야.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 하지만 그러다가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봐 두렵기도 해. 난 어떻게 해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