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vs. 밴드

Posted by hi G on 2011. 8. 5. 02:25
나가수... 점점 집중력도 떨어지고, 가수들 준비성도 떨어지고, 매주 이제 진짜 그만보자고 작정해 왔지만, 예상치 못했던 자우림의 등장에 그 결심이 와장창 무너져 버렸다. 이전까지 난 자우림을 TV에서 본 기억이 없었다. 학창시절 거의 유일하게 음반을 구입하고 노래만 듣고 좋아했던 뮤지션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는데 오랜만에 TV에서 보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나가수 제작진은 YB와 자우림의 대결구도로 분위기를 몰아가는듯 하지만, 사실 나가수에 나오는 대부분 가수들이 그렇듯 어느 한쪽이 더 잘나고 못난 걸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YB와 자우림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분명히 색깔이 다른 밴드인데, 자꾸 1등 7등 운운하며 비교하는 게 영 맘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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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진짜 남자. 진짜 멋진 한국 남자.

후까시, 있는척, 이런거 전혀 없고,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초등학교 5학년 악동의 매력이 튀어나오는 남자.

상상력을 좀 보태자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레코드방에서 커트코베인이나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를 들으며 황홀경에 빠지는 소년이었을 것 같고, 기타에 미쳐 침대에서 기타를 껴안고 잠들던 나날이 있었을 것 같고, 술은 즐기되 과하지 않을 것 같고, 음악 말고 운동(야구? 등산?) 또는 독서 같은 취미가 있을 것 같고, 여자 경험은 적지 않지만 늘 한번에 한 여자만 사랑했을 것 같고, 딸이라면 사족을 못 쓸것 같은 남자 (근데 이건 사실이다).

한마디로 건강한 한국 남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몽땅 합쳐놓은 듯한, everything good about being a Korean man, 뭐 이런 느낌을 주는 가수다.

제일 좋아하는 곡은? 




박하사탕. 내 올타임페이보릿쏭 중에 하나다, 흑.




그리고 자우림...

너무 오랜만에 보는 자우림, 그리고 보컬 김윤아는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인형같은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범접하기 힘든 그의 사납고 강한 매력은 나가수 첫 무대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들의 음악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단어는 bipolar. 인터뷰에서 김윤아는 자우림이 '다양한 얼굴을 지닌 밴드'라고 완곡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모두 조울증적 증세이다. '파애'나 '마왕'같은 노래를 듣고 있자면 한없이 음침한데, 어느 순간 '하하하쏭,' '매직카펫라이드' 같은 코믹하고 발랄한 노래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맑은' 노래들이 나는 언제라도 푹 꺼질지 모르는 조증manic 현상인 것 같아 오히려 불안하다. 자우림의 매력은 누가 뭐래도 '그로테스크.' 보통 시각 예술을 표현할 때 쓰이는 단어이지만, 뭔가 비틀어지고 부서진 듯한 아름다움, 기괴함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이 자우림의 매력이다.

조각조각 부서진 내 마음
부서진 내 마음은 레몬과자맛이 나
(파애)

미안해 널 미워해 이대로인걸
이해해 넌 그렇게 그대로인걸
어느새 난 빗물에 젖어 슬픈 새
(미안해 널 미워해)

그들은 매일 눈물을 흘려
그 눈은 마치 호수와 같아
그러나 두 눈을 잃어도
슬픈 사랑만은 않기를
슬픈 사랑만은 않기를
슬픈 사랑만은 않기를-
(마왕)




마왕.




아무튼, 아무리 욕을 해도 나가수를 그만 보기 힘든 이유는 내 어린 시절을 다 바쳐 사랑한 이런 뮤지션들이 자꾸 나오기 때문... 다만 서바이벌 형식 때문에 노래는 내팽개치고 품위 내던지고 '쇼'에만 급급한무대는 이제 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