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일기 (8)

Posted by hi G on 2012. 6. 9. 08:41
외과 실습 5주만에, 외과에 소질이 있다는 얘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질문에 몇 개 제대로 대답하고, suturing을 몇 개 제대로 했던 것 뿐인데... 왠일로 무드가 좋았던 괴팍한 (수술이 잘 풀리지 않으면 쓰레기통을 걷어차는 고약한 습관이 있는) 어텐딩의 과분한 칭찬이라는 건 알지만, 한번도 내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외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외과는 아닌것 같다. 

오늘 본 마지막 케이스는 심한 당뇨로 한쪽 발에 아물지 않는 심한 감염이 생겨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환자였다. 마흔 살 정도 됐던 그는 한쪽 발을 잃기에는 너무 젊었다.  수술을 앞둔 그는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했다. 보통 수술 전 환자에게 가서 인사를 하지만, 이번에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의 수술을 지켜볼 의대생이에요.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하고 말을 거는게 도저히 적절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수술실에 들어온 그는 금세 마취를 받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약 한시간 반에 걸친 비교적 간단한 수술을 통해 그는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 사이 주치의와 레지던트와 간호사들은 제일 좋아하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무엇인지, 몇년 전 이 병원에 있었던 어느 외국인 레지던트의 영어 발음이 얼마나 웃겼는지 담소를 나눴다. 기술적인 얘기("Bovie, please," "cut," "suction," "DeBakey")가 오가기는 했지만,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하긴, 이상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전기톱으로 이 사람의 다리를 잘라내고 있는데, 이게 얼마나 기가막힌 상황인지 생각하는것 말이다. 수술을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민첩한 기술이 가장 중요한데, 괜히 쓸데없는 감정이나 생각에 사로잡혀 수술에 방해가 된다면 우리에게도 환자에게도 좋을게 없겠지?

적절한 상황에서 객관적이고 detach할줄 아는 것은 좋은 외과의사(혹은 모든 의사들)에게 필요한 자질이겠지만, 환자는 수술대 위에 눕는 순간 혈관과 신경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물체object가 된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당신의 살을 찢고 있는데, 당신은 아픔을 느끼지도 못하고, 우리가 당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물론 매 수술마다 중요한 목적이 있다. 이 수술이 환자의 목숨을 살릴 것이다. 그가 비록 휠체어에서나마 다시 단풍을 볼 수 있게 해줄 것이고, 딸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하지만 수술대 위에서 매번 벌어지는 환자의 대상화objectification가 나는 본능적으로 싫다.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 한 사람을 물체로, 기계로 대해야 하는 그 과정이 내게는 몹시 불편하다.

수술대 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이다. 이 환자가 보험이 없어서 primary care physician를 보지 못하는 바람에 당뇨 관리가 전혀 안됐다는 사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와우! BKA(below knee amputation)이라고!?'하고 흥분하는 레지던트는 있었지만.

나는 좀더 interactive한 과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