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일기 (1)

Posted by hi G on 2012. 5. 8. 10:40

내가 1-2학년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곱씹으며 3학년을 시작한다. 지지부진한 pathway, molecular receptor, transcription factor 따위나 외우면서 얼마나 괴로웠는지를 떠올린다. 그에 비하면 병원에서 환자들과 일하는 건 재미있을거야, 라고 주문을 건다.

로테이션의 첫날이었다. 출근은 아침 8시, 퇴근은 오후 4시. 아침 식사도 제공되고, 준비할 것도 하나도 없었고, 내내 자리에 앉아서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하면 안되는지 설명을 듣고, 간단한 워크샵만 하고 돌아왔다. 매일 이렇기만 하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내일부터 오전 5시 출근이다. -_-

아직 중요한 건 하나도 안 했는데 막상 병원에 갔다와보니까 괜히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크리스한테 쫑알쫑알 털어놓고 싶었는데, 크리스가 중요한 모임이 있어서 통화를 제대로 못했다. 별것도 아닌데 괜히 눈물이 났다. 크리스가 미안해하고, 나도 크리스가 미안해 하는게 미안했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게 힘들다. 나중에는 결국 좋은 친구가 된다 하더라도, 처음의 그 어색함과 낯섦이 몹시 힘들다. 내가 괜히 더 힘들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힘든게 덜 힘들어지는 것 같지도 않고...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병원, 그중에서도 가장 심하다는 외과, 그리고 서로 견제하면서도 협동해야 하는 동기들...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괜히 혀도 더 꼬이는 것 같고... 외과 presentation은 가뜩이나 빨리빨리 말하고 질질 시간끌면 눈치보이는데... -_- 으악

오리엔테이션 중 들었던 선배 의사들의 말 한마디가 유독 도움이 된다. 1-2학년때는 내가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내가 얼마나 성적을 잘 받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교수'가 아닌 '의사'가 가르친다는 것은, '학생'보다 '환자'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1-2학년때만큼 pamper해주지는 않겠지만, 'It's not about you anymore...it's about patients'라는 말을 떠올린다면, 내가 실수해서 레지던트한테 혼나도, 어텐딩이 시간이 없어서 내 질문을 미룬다고 해도, 조금 덜 속상하지 않을까.

오리엔테이션 중에도 별 생각 없었는데, 막상 병원에 가서 같이 일할 사람들을 보고 괜히 겁먹은 것 같다. 휴... 심호흡 하고, 아자아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