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Luna-

Posted by hi G on 2012. 11. 27. 11:56



와- 브루넬레스키의 돔이 실린 엽서라니, 너무 낭만적인걸! 난 2004년에 피렌체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갔었어. 밤에 친구들과 두오모 근처의 어느 한적한 골목에 있는 펍에 갔는데, 당시에는 술도 마실줄 몰라서 오렌지 주스를 시켰던 기억이 나네.

큰 뜻을 품고 큰 위험을 감수하고 큰 세상에 나가있는 너를 보며 나를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혈압을 재고 피검사 소변검사를 판독하고 약 처방을 써내려가는 와중에 예전의 낭만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건 사실이지만, 또 나름대로 (네 표현을 빌리자면) '현실을 좀 유보하고 수련하는’ 과정에서 얻는 희열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됐어. 병의 원인과 증상이 맞아 떨어질 때의 쾌감, 책으로만 접했던 희귀한 병리를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할 때의 흥분, 환자가 치료에 잘 반응할 때 느끼는 보람... 피천득 시인이 과학자 딸에게 ‘차고 맑은 기쁨’이라고 표현한 그것이 아닌가 싶어. 이렇게 차근차근 수련하며 준비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거라는 희망도 다소 건조한 일상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돼.

힘든 일을 하다보면 burnout이 으레 오기 마련인데, 너는 건강 (몸 건강, 마음 건강) 잘 챙기고 있는거야? 피렌체에서 푹 쉬고 좋은거 많이 보고 맛난거 많이 먹고 오길. 

나도 우리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음. 그때까지 건강하길... ^^

From Providence with Love,

Hi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