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reading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on 2011. 4. 20. 05:09
나는 미국에 오고 나서 처음 1년동안 있었던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어린 마음에 나름 충격을 받았나...? 온두라스에서 분명 영어 공부를 했는데, 막상 미국에 와보니 다른 애들과 얘기하기가 버거웠다. 우리 학년은 열여섯명 뿐인데다 인터내셔널 학생은 나와 석영이가 처음이어서, 눈에 안 띄는 채로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뉴올리언즈 학교는 여러모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언어에 대한 컴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좋은 선생님들께는 아직도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특히 Dr Hood, Ms Fallon, Ms Westfall. 이분들 덕분에 나는 언젠가부터 읽고 쓰는 것을 즐기는 학생이 되어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땐 글짓기 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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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 상이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 가장 많은 도움이 된건 summer reading 프로그램이었다. 해마다 학교에서 내주는 방학 숙제는 독서 뿐이었다. 방학이 시작하기 전 늘 읽고 싶은책 열 권을 고르고, 개학 첫 주에 세 편의 독후감 제출해야 하는 것이 전부. 방학 하기 전, 리딩 리스트를 작성하고 나서 새 책을 한꺼번에 사는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는데...

필수 도서는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리스트를 작성할 땐 늘 선생님과 1:1 상담을 했었다. 덕분에 억지로 해야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흔히 말하는 "중요한 책"을 편히 읽을 수 있었다. Garcia Marquez, Nabokov, Rushdie, Woolf, Faulkner 등 여러 대작가의 작품을 여름방학때 처음 접했는데, 필수가 아니어서 오히려 더 재미나게 읽고, 또 솔직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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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을 하고 나서 가장 좋았던 것은 저녁 때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논문/수업을 위한 리딩에서 드디어 해방된 것! (물론,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fun reading을 한 overachiever 들도 있었다 - e.g. 삼식이는 늘 페이퍼를 미리 써놓고  남는 시간에 도서관에서 도스토예프스키와 괴테를 읽었다고 했다...끙.)

그런데 문제는, 독자로써의 끈기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을 할수록 점점. 특히 하루종일 문서 작업을 하거나, 클라이언트와 긴긴 인터뷰를 하는 날이면 더더욱 그렇다. 어두운 주제의 글은 도저히 못 읽겠고 (특히 전쟁, 폭력에 관한 내용), 긴 소설을 읽는 참을성도 점점 없어져간다. 겨우 뉴요커나 뉴욕 리뷰를 짬짬히 읽는 정도.

결국 1년동안 책 수가 거의 늘어나지 않아서 책꽂이에다 반은 책, 반은 부엌 용품을 정리해두고 있다. 수납공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지만, 가끔씩 '책꽂이'에서 '후라이팬'을 꺼내다 보면 문득 기분이 착잡해진다 -.-


그리하여 생각해보기 시작한, 올 여름 꼭 읽고싶은 작가 리스트:
David Foster Wallace, Martin Amis, Jack Kerouac, Joan Didion, George Orwell, Thomas Pynchon, Anton Chekhov + suggestions welc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