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dy

Posted by hi G on 2011. 5. 20. 04:57
영화평론가 A. O. Scott은 말한다. 사람들은 우디 앨런의 영화가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근본적으로 유쾌한 사람이 아닐까 착각하곤 하지만,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그는 수많은 영화를 통해 우주를 지배하는 도덕적 질서 따위는 없음을 냉혹하게 선언해왔다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속 그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니.

우디 앨런의 영화를 좋아하는 건 일종의 '자학'이다. 중증 신경증 환자에 꼴불견 변태 늙은이 - 정말 싫어하고 싶다. 게다가 그 감미로운 시네마토그래피와 위트 넘치는 대사 속에 숨어있는 세상에 대한 냉소와 처절한 니힐리즘, 그건 내가 믿는 모든 것 - 신, 사랑, 윤리 - 에 대한 passive-aggressive한 모욕임을 분명히 안다. 하지만 2005년 작 <Match Point>를 통해 그를 알게 된 이후로 나는 그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꼼짝없이 극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근래 마음에 이는 왠지모를 동요... 무언가에 대한 굶주림, 그리움, 혹은 상실감... 반복적이고 예측가능한 멧스쿨 때문일까? 단순해서 고마웠던 일상이 견딜 수 없이 지루해지고,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절박감이 엄습해온다. Ennui - 이것도 일종의 자학이지 싶다. <Vicky Cristina Barcelona>의 Cristina가 그랬던 것처럼-:

It was only Cristina, as the last days of summer expired, who began to experience an old, familiar stirring...a growing restlessness that she dreaded, but recognized only too well. Suddenly, thoughts started taking precedence over feelings. Thoughts and questions about life and love. And, as much as she tried to resist these ideas, she could not get them from her mind.

우디 앨런을 인용할 때마다 뭔가 absurd해보이는 걸 각오해야 하는 건 알지만, 그의 의도가 뭐든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그 목소리가 한켠에 울리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떨 땐 귀에 대고 속삭이는 악마로서, 어떨 땐 반면교사로서. 세계관이 어떻든 그를 싫어할 수 없는 건 아마 이런 유창함 때문이 아닐까.

물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의 영화는 시청각적 효과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그리고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위에 첨부한 <Match Point>의 한 장면처럼) 얼마든지 매혹적일 수 있다. 원래 우디 앨런은 뉴욕을 그려내는 걸로 유명하다지만, 베르디의 오페라가 울려퍼지는 런던과 스패니쉬 기타에 흠뻑 젖은 바르셀로나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게다가 최근 몇년간 앨런의 뮤즈 역을 맡았던 스칼렛 요한슨 뿐 아니라 페넬로페 크루즈, 하비에르 바르뎀, 휴 잭맨, 조나단 리스마이어스, 이완 맥그리거, 나오미 왓츠가 그의 작품에 출연해왔다. 그리고 내일! Rachel McAdams, Owen Wilson, Adrien Brody, Carla Bruni (yeap, the French first lady...)까지 총출동하는 <Midnight in Paris>가 개봉한다 (물론 프로비는 좀 기다려야 되지만...). 최근 우디 앨런 영화는 <Match Point>나 <Vicky Cristina Barcelona>만큼 완성도 높은게 없었는데, 매일밤 자정의 파리에서 일어나는 마법에 관한 내용이라니 한번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