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ding a love that works

Posted by hi G on 2011. 10. 27. 03:32
클래스메잇들하고는 진짜 못 놀겠어.

올해부터 같이 살기 시작한 룸메이트 J와 내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우리한테 문제가 있는건 아니지?
그냥 노는 문화가 다른 거지. 다들 beer pong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맥주 홀짝거리면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애한테 억지로 말거는 것도 싫고. 
(우리 둘다 beer pong을 엄청 싫어한다)

그렇다고 J와 내가 비슷한 사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클래스메잇들과 별로 친하지 않다는 것을 빼면 비슷한게 거의 없다. 나는 개를 좋아하고, J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J는 일리노이에서 왔다. 나는 남자친구가 있고 J는 여자친구가 있다.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J는 매운걸 절대 못 먹는다. 나는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게 정말 귀찮다. 차라리 설거지를 하겠다. J는 그 반대다.

참 다행인건, 우리 둘다 영화보는 걸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영화 취향은 좀 다르지만, 오버랩하는 부분이 있다. 중요한건, J가 영화를 즐긴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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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J와 집에서 movie & wine night를 했다. 내가 고른 영화는 Strictly Ballroom (1992), J는 The Secretary (2002)를 골랐다. 전자로 말할 것 같으면 수도없이 봐서 유감스럽게도 더이상 별 감흥이 없다. 따라서 처음 본 영화, The Secretary (2002)로 글을 이어가겠다.







'Sexuality as a spectrum, rather than a dichotomy'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건 대학교 3학년. 그때 참 유별난(?) 친구들이 많았다. 이쁘장하게 생긴 존은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끔씩 여장을 했다. 종종 남자들한테 추파도 받는다고 했다. '내가 게이일수도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그건 확실히 아닌 것 같아. 다만 '마초'가 아닐 뿐이지.' 그리고 자신이 마초가 아니라는 사실을 존은 너무나도 맘편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지난 겨울 마광수의 책을 읽은 후, 모든 성적 관계를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이분론적 접근법 대신 가학-피학의 관계sadomasochism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는 대개 남자를 가학의 주체, 여자를 피학의 대상으로 construct한다. 권력, 야망, 폭력 등의 가학적 성질은 주로 남성과 연관지어졌고, 참을성, 자비, 희생 등의 피학적 성질은 주로 여성과 연관지어졌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강해질 것을, 여자아이들은 온순해질 것을 강요받는다. 물론 각종 성호르몬의 역할도 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성이 가학자, 여성이 피학자 역할을 하는 이성관계에 만족하고 사는 데에는 이러한 여러 생물학적 사회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도 으레 '별난 소수'로 인식되는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에 관한 영화가 The Secretary이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관계(굳이 이 영화에 나오는 상사와 여비서같이 과장된 예가 아니라 하더라도)에는 가학과 피학이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아주 '정상적'인 이성관계에서도 대개 가학자와 피학자가 있고, 가학자가 반드시 남자인 것만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또는 상대에 따라 똑같은 사람이 가학자가 될수도 있고 피학자가 될수도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동성커플 안에서도 가학-피학 관계가 존재한다. 소위 '밀땅'이라는 것도 가학과 피학이 가져다주는 스릴인 셈이다. 

영화 예고편을 보면 'a story of two people who find a love that works'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나온다. 굳이 누가 내게 수갑을 채우지 않더라도, 혹은 내가 누군가를 채찍질하지 않더라도, '나를 꽉 잡고 눌러줄 남자'를 원하는 여자, '나만 떠받들어줄 여자'를 찾는 남자, 우리 주변에 너무 많지 않은가.

결국 내게 맞는 가학-피학의 균형을 찾는 것,
The Secretary는  내게 맞는 사람을 찾는 것에 대한 영화다.



관람 포인트:

1. 주인공 여비서 역을 맡은 Maggie Gyllenhaal. 너무 늘씬하고 예쁜데다가 살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연기를 신들린듯 소화해낸다. 이 역할로 Golden Globe 여우주연상 등 각종 시상 후보에 올랐다. 여기서 룸메이트 J가 덧붙이는 점은, 대안적alternative 성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정신적 문제가 있는 법은 아닌데, 영화에서는 그 점을 오히려 과장한 듯해 아쉽다.

2. Cinematography: 자주색, 청록색, 짙은
회색, 보라색 등의 색감이 많이 활용된다. 'Mainstream'보다 'Alternative'라는 개념을 잘 살리고자 하는 시도였던 것 같다.

3. 너무 진지하게 관람하는 것보다는 조금 코믹한 마음가짐을 갖고 보는 게 좋을 듯하다. 나는 얼떨결에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채 너무 집중하며 봐서 '재미'를 좀 잃었던 것 같다.

4. 혹시 '뭐 이런 영화가 다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래뵈도 권위있는 독립영화제 Sundance Film Festival에서 2002년 Special Jury Prize를 받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