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project

Posted by hi G on 2011. 6. 18. 22:23
올 여름, 불임[각주:1]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목표는 늘 그렇듯 거창하다. 대한민국 불임의 현주소를 밝히고, 어떤 문화적 또는 정치적 요소들이 대한민국 불임 의학의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아보자는 취지인데, 휴... 갈길이 멀다. 욕심에 비해 배워야 할 건 너무 많고 시간은 제한돼 있어서 걱정이다.

어느 불임 관련 NGO에서 보관하고 있는 불임 여성들의 사연과 수기를 읽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의사가 되기 전에 충분히 시간을 갖고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연습해 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 중 하나였는데, 아마 appointment room에서는 일일이 다 들을 수 없을 환자들의 사연을 듣는 것 같아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잘 쓴 글도 있고 다소 두서없는 글들도 있지만, 사연들이 하나같이 눈물을 글썽이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희망과 절망의 드라마다. 

수백 통의 사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평범할 수 없는 고통'이다. 불임의 이유야 다양하지만(여성 불임, 남성 불임, 원인 불명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당연한' 혹은 '자연스러운' 이치로 여기는 것을 가질 수 없는 부부들의 고통, 두려움, 죄책감, 그리고 소외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평범하다는 게 뭘까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늙어가는 것만큼 '평범한' 게 또 있을까. 하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늘 나름대로의 '특별함'(탱고를 배운다던지, 히말라야 등반을 간다던지)을 추구하며 살고, 또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평범함'(멧스쿨에 간다던지, 헐리웃 영화를 즐겨 본다던지)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불임으로 인한 고통은 대부분 심적 고통이다. 보통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해서 생명과 육체적 건강에 직접적인 해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한 회에 수백만원에 이르는 불임 시술이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건강health'의 정의가 단순한 질병의 유무를 넘어 전반적으로 적극적이며 행복한 삶의 자세까지 포함한다고 본다면, 불임 역시 질병으로 봐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불임은 '질병'일까 아닐까? 앞으로 스스로에게 꾸준히 물어봐야 할 질문이다.

불임을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기술이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성공률이 그렇게 높지 않고 또 시술 과정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몹시 소모적일 수 있다. 불임 시술도 좋지만, 그 과정을 겪는 환자들을 위한 서포트가 절실히 필요하다. 실제로 사연들을 읽어보니 많은 불임 부부들이 심각한 우울증과 대인기피현상에 시달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원측에서 간단한 focus group을 주선하던가(AA같은 형식도 괜찮지 않을까?) 심한 경우 전문 상담사를 연결해 주는 것도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못들어봤다.

아무튼, 생각도 정리할 겸,  또 무거운 얘기 속상한 얘기 많이 듣게 될테니 그걸 vent라도 할 겸, 여름 내내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종종 글을 써올릴 생각이다. suggestion과 feedback은 언제나 웰컴 ^^
  1. 최근 불임不姙이라는 단어를 '난임難姙'으로 대체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임신과 출산이 단정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적으로 어려운, 치료 가능한 상태로 인식의 전환을 추구하려는 취지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