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coping mechanisms fail

Posted by hi G on 2011. 12. 2. 13:24

PHQ-9이라는, 9개 문항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우울증 검진 테스트가 있다. 오늘 Doctoring 시험에서 그걸 환자에게 administer하느라 진을 뺐다.

지난 2주간 슬프고 우울한 기분이 든 적이 있습니까?
평소 하던 일에 더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까?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듭니까?
예전에 비해 쉽게 피곤하고 무기력한 느낌이 듭니까?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느낍니까?
입맛에 변화가 있습니까? 평소에 비해 더 많이 먹거나 덜 먹지 않습니까?
예전보다 행동이 느려지거나, 혹은 지나치게 활동적이라는 말을 주변사람들에게 듣습니까?
평소보다 잠을 훨씬 많이 자거나, 혹은 잠을 이루지 못합니까?
자살 또는 자해 충동을 느낍니까?

이걸 처음 배웠던 몇달 전만 해도, 그냥 단순히 standardized questionnaire인가보다 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이거 혹시...날 위해 만든거?  ㅎㅎㅎ

각 문항에 점수를 매겨서 mild/moderate/severe depression 진단을 내릴 수 있는데 (최종 확정 진단이라고 말할수 있는 잘 모르겠다... PHQ-9은 기본적으로 검진용screening 테스트니까)...


나 우울증 맞나보다... ㅠㅠ


사실 놀랄 것도 없다. 지난 몇주간 불평밖에 한게 없으니까. 뭘 해도 재미없고 (아 이건 사실이 아니다. 멧스쿨만 싫다. 친구들과 노는건 아직도 즐겁고, 빈대떡도 밤새 부칠수 있다. 다시 기자 하라고 하면 쌩유-하고 할거다), 시험점수 나올때마다 우울해지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하는 점수가 안나오니 의욕도 떨어지고, 악순환이다. 게다가 지난 몇주는 시험의 연속이었다. 땡스기빙 전 열흘간 시험이 3개나 있었다. 멧스쿨 시작한 이래 최악의 스케줄이었다. 땡스기빙때 며칠 놀았지만, 쉬고 나니 다시 책을 여는게 더 힘들다. 수업이 다시 시작한지 1주일이 되어가는데, 배운건 하나도 없다. 수업에 앉아있어도 전혀 집중이 안되고, 수업 끝나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생산적인 걸 할 수가 없어서 fb을 뒤적이거나 드라마를 본다.


햐... M2가 depression rate이 제일 높다고 하더니, 정말 왜 그런지 이해가 간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만 이런게 아니다. 

나처럼 스스로에게 PHQ-9을 검사해본 B는 (바보같은 녀석이 여기 또있다) fb에 대문짝만하게 자기가 severe depression이라고 써붙이질 않나,
기껏 같이 공부하자고 집에 불러온 Jen은 오자마자, '안되겠다, 너 공부 끝나면 깨워'하고 내 침대에 벌렁 누워버리질 않나,
늘 차분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룸메 J도, '야, 우리 다 때려치고 앞으로 매일 사람들 불러다 파티나 할까?'라고 묻지 않나,
심지어 우리 학년 최고 수재 중 하나인 R도 '나 아직까지 배운게 하나도 없어'라고 한숨을 쉰다 (사실 이건 믿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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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만 해도, coping mechanism이 좀 있었다.

물론 1년을 쉬고 돌아와서 몸과 마음이 많이 안정이 됐었고,
남들은 다 취직이나 대학원 걱정하는 와중에 갈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고,
조금 지루하긴 해도 단순하고 '하면 되는'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지금 몇년 잠깐 공부하면 나중에 편하게 살 수 있겠지, 라는 희망도 있었다.
의사만 되고 나면 정말 하고싶은 것 - 그것이 journalist건, activist건, photographer건간에 - 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시험은 늘 어려웠지만, 매번 낙제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고,
열심히 하면 가끔씩 좋은 점수도 나와줘서 날 뿌듯하게 했다.
시험이 끝나면 날아갈 듯 기뻐서 친구들과 맥주마시며 신나게 놀았다.

그게 그러니까, 다 1학년때 일이다.

이제는 '지금 여기서 내 청춘을 낭비하고 있는건 아닐까, 대신 이 시간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하며 능력과 경험을 쌓을 수도 있을텐데'하는 아쉬움과 두려움이 일고,
예전엔 어딜가서 무슨 일을 해도 잘하고 칭찬받을 자신이 있었는데, 이젠 뭘 해도 칭찬은 커녕 간신히 낙제만 면하고 있을 뿐이고,
이놈의 공부는 해도해도 끝이 없고,
이젠 시험이 끝나도 지쳐서 놀 기력도 없다.
시험 점수가 나올때마다 '이게 내 한계인가'라는 좌절감만 들 뿐이고,
졸업을 해도, 기다리는건 더 피곤하고 배울게 많은 인턴/레지던트 생활.

의사다운 의사가 되려면 아직도 최소한 6년...아직 반의반의반도 못왔는데 난 벌써 뻗어버릴 것 같다.

그렇다고 레지던트가 끝나면, 정말 하고싶은 걸 할 수 있을까?
그 전에 '하고싶은 것', '꿈' 이런거 다 잊어버릴것 같다. 사라질 것 같다.
그렇게 공부만 하다가, 시험만 보다가 그냥 'nobody'로 늙어 죽는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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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방어기제가 다 효력을 잃은 지금,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한데,
멧스쿨 생활은 inspiration과는 거리가 멀다. 아아아아아주 멀다.

엄마는 자기최면을 하라고 하신다. 부정적인 생각은 악순환을 낳는다면서...

But I can't even begin to imagine what kind of self-delusions I can tell myself -- especially since med school is killing the little bit of imagination and creativity that I had, as we speak.


So, any suggestion for good self-delusions? What do people tell themselves to carry on with their everyday l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