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학과 일기 (2) Do as I say, not as I do

Posted by hi G on 2012. 12. 7. 12:24
요즘 내가 보는 환자들은 대부분,

BMI가 25 이상이고 (=비만),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고,  
야채와 과일은 싫어하고,  
운동은 안하고, 
흡연자이고,  
술도 많이 마시고...

하루종일 나는,

살 빼세요,  
기름진 음식은 피하세요,  
야채와 과일을 많이 드세요,  
운동 하세요,
음식은 싱겁게 드세요,  
담배 끊으세요,  
술 자제하세요...  
 
그렇게 하루종일 환자들이랑 씨름하고 집에 오면 나는

짜고 기름진 음식 먹고
침대에 누워 인터넷 서핑하다가
잔다.

그러다 가끔 괜히 찔려서 오렌지나 바나나 하나 먹어주고...

마지막으로 운동한건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 


가정의학과 일기 (1) 힘든 날

Posted by hi G on 2012. 12. 5. 11:01
요즘, 가난한 미국 시골 동네의 클리닉에 다닌다.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보험이 없는 사람들까지 sliding scale fee로 받는 곳인데..

이곳에서의 하루는 늘 고단하다.

사람들은 늘 아프거나 불평불만 투성이다.

열의 여덟아홉은 만성 우울증 혹은 불안증에 시달린다.
항우울제, 진정제, 수면제를 서너 종류씩 달고 산다.

만성 통증 혹은 만성 피로 환자도 많다.
Fibromyalgia, reflex sympathetic dystrophy, chronic Lyme 같은, 원인도 병리도 불분명한 진단을 지푸라기처럼 붙잡고 중독성 강한 진통제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틴다.

매일매일 이런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내 멘토 선생님의 말과 표정에는 늘 짜증이 역력하다.

간호사들은 이런 환자들을 늘 뒤에서 비웃는다.
 
어떤 colleague의 남편이 몇년 전 자살했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밝고 엉뚱하기까지 한 사람에게 그런 어두운 과거가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어떤 환자는 조직검사 도중 너무 아팠는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옆에서 바라보던 내가 무심코 손을 잡아주었는데 -- 환자가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 멘토가 그런 나를 보고 희미하게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원래 잘 웃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의 high point는, HIV 검사가 음성으로 나왔다고 전해주자 어두웠던 얼굴이 순간 활짝 핀 어느 열다섯살 환자. 
 
고단하다.

정신없이 일하다 한숨을 돌리고 정신을 차리면, 오히려 가슴이 무겁고 코가 시큰해진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집에 오면 몸은 고단한데, 누워 눈을 붙이면 태산같이 쌓여있는 과제 생각에, 그리고 또 악몽에 시달릴까 두려워 잠이 오질 않는다.

세상에는 의사도 많고 약도 많은데, 왜 우리는 이렇게 늘 아프고 힘들고 슬픈걸까.